집 수리 인테리어 주의할 점 – 대전점집 용한무당 점집추천 점집후기 명화당 처녀보살
집수리하는 것도 우리가 손을 댄다는 자체가 동토가 날 수가 있기 때문에 집안에 운세가 안 좋거나 몸이 아프신 분이 계신데 잘못 건들이면 동토 바람으로 인해서 그 화가 또 닥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런 부분은 항상 무속인 선생님들과 은원 공론을 하시고 결정을 하시면 여러분들한테 닥칠 악재를 또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되겠죠 윤달에 여러분들께서 하면 좋은 일 중에 하나가 조상님들을 위해서 어 비는 공덕이 공덕이 두 배 세 배가 됩니다 조상님 전에 비다라 의미는 조상님이 편안해야 산 사람 예 산 사람에는 자손들이 속하겠죠 조상님이 편안해야 자손들이 편하고 조상님들이 배가 안 고파야 자손들이 금전으로 풍파가 없고 자손들이 대길하다 이렇게 아시면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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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당 처녀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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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移葬):묘를 쓴 후 다시 어떠한 목적에 의하여 새로이 묘지를 택하여 시신을 옮겨 매장하는 상례의식.
개장(改葬)·면례(緬禮)·면봉(緬奉)·천장(遷葬)이라고도 한다. 중국문헌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문왕(文王)이 왕계(王季)를 과산(過山)의 기슭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주나라 때 이미 이장풍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서는 『태종실록』 태종 10년(1410) 8월조에 “개장복(改葬服)을 예조에서 시마(緦麻)로 행하지 않을 수 없다.”는 기록이 보이고, 『가례증해(家禮增解)』·『상례비요(喪禮備要)』·『사례편람(四禮便覽)』 등에도 그 절차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어서 일찍부터 행해져온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관혼상제의 규범으로 여겼던 주자의 『가례』에는 이에 관한 절차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일반적으로는 상변례(喪變禮)로 취급되고 있다.
이의조(李宜朝)의 『가례증해』에 의하면, 이에 관한 절차는 명나라의 구준(邱濬)이 『개원례(開元禮)』를 근거로 하여 『가례의절(家禮儀節)』에 수록하였으며, 이것을 토대로 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신의경(申義慶)이 그의 『상례비요』에 수록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나온 예서들은 모두 이 『상례비요』의 개장절차를 인용하여 수록하고 있다고 하였다. 신의경은 개장을 논의하면서 “옛날의 개장은 분묘가 어떤 이유에서 붕괴되어 시신이나 관이 없어질 우려가 있을 때 하는 것이었으나, 요즈음에는 풍수설에 현혹되어 아무 이유가 없이도 천장(천묘)을 하는데, 이것은 심히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개장에는 개장할 날을 받는 일부터 옛 묘지를 파헤치는 일과 새 묘지를 만들고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일을 마치는 절차가 포함된다. 신의경의 『상례비요』에 기록된 절차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개장의 절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개장을 하려면 먼저 묘지를 고르고 모든 절차를 초상 때와 같이 준비한 다음 날짜를 택하여 무덤자리를 만든다. 개장하기 하루 전에 사당에 “체백(體魄)을 모실 땅이 아니기 때문에 뜻밖의 환란이 생겨 선령(先靈)을 놀라게 할 것 같아 걱정스러워 개장한다.”는 내용으로 고사한다.
이튿날 내외친 모두 상복으로 갈아입고 옛 묘에서 토지신제와 계묘고사(啓墓告辭)를 올린다. 계묘고사는 주과포혜(酒果脯醯)를 묘 앞에 진설한 뒤 곡과 재배·분향·단헌·곡의 순으로 진행된다. 그 다음에 개분(開墳)을 하는데 자손들이 모두 나아가 곡을 한다.
영등할망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음력 2월 초하룻날 찾아와서 2월 15일경에 떠난다고 알려진 풍신(風神:바람신)이며 풍농신(豐農神).
영등할망은 육지의 해안 지방에서는 풍신(바람신)으로서의 개념이 강하지만 제주 지역에서는 해산물이나 농작물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풍농신으로 더 알려진 신이다.
구전에 의하면, 영등할망은 음력 2월 초하룻날 한림읍 귀덕리에 있는 ‘복덕개’라는 포구로 들어온 다음 먼저 한라산에 올라가 오백장군에게 문안을 드리고, 어승생 단골머리부터 시작하여 제주 곳곳을 돌며 봉숭화꽃·동백꽃 구경을 한다.
그러고는 세경 너른 땅에는 열두 시만국 씨를 뿌려 주고, 갯가 연변에는 우뭇가사리·전각·편포·소라·전복·미역 등을 많이 자라게 씨를 뿌리고는, 2월 15일경 우도를 거쳐 자신이 사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내방신(來訪神)이다.
이 때문에 제주 지역에서는 2월을 ‘영등달’이라고 부르며 영등굿을 벌여 영등할망을 대접하는데, 초하룻날은 영등할망을 맞는 영등 환영제를 하며 12일에서 15일 사이에는 영등할망을 보내는 영등 송별제를 연다. 굿은 주로 마을 단위로 행해지며, 어업이나 농업에서의 풍요를 기원한다.
영등할망은 제주 앞바다의 어디쯤에 있는 외눈박이 섬에서 찾아온다는 사람도 있고, 강남천자국에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거처가 불분명한 신이다. 다만 음력으로 2월 초하룻날 제주도에 와서 바닷가를 돌면서 보말(고동의 일종)을 까먹으며 다녀서, 2월에 보말 속이 비어 있으면 영등할망이 찾아온 증거라고 한다.
제주 지역 심방들은 영등할망이 외눈박이 섬에서 온다고 믿고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에 한경면 판포리 사람이 우연히 외눈박이 섬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수원리 사람들이 표류해서 들어오자, 외눈박이들이 판포리 사람한테 수원리 사람들을 찬거리로 삼아야 하니 잘 감시하라고 일렀다.
이에 판포리 사람은 수원리 사람을 몰래 도망가게 해주면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개남보살〔觀音菩薩〕, 개남보살.” 하고 외라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멀리 고향 마을이 보이자 수원리 사람들은 마음이 놓여 개남보살 외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 순간 다시 거대한 바람이 불더니 수원리 사람들을 외눈백이 섬으로 돌려보냈다. 판포리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화를 내더니, 이번에는 집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개남보살을 외면서 가라고 구제하여 주었다.
수원리 사람들이 그 은혜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이 공을 어떻게 갚느냐?”고 하였다. 그러자 판포리 사람이, “나는 2월 초하루에 제주에 들어가 보말을 까먹으며 바닷가를 도니, 그리 알고 나를 위하라.” 하고 말했다.
그 후로 수원리 사람들은 영등당을 짓고 영등 환영제와 영등 송별제를 지낸다고 한다.
외눈박이 섬에서 살든 강남천자국에서 살든, 영등할망은 음력 2월 초하룻날 제주로 들어와서 그 달 15일경 제주를 떠난다. 이 기간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변덕스러운 날씨와 혹한이 계속된다.
제주 지역 속담에 “영등할망 청치메 입엉 들어오민 날 좋곡, 우장 썽 오민 날 우치곡, 무지게 입엉 오민 춥곡, 몹쓸 민 름 분다”는 말이 있다. 영등할망이 청치마를 입고 오면 날이 좋고, 우장을 쓰고 오면 비가 내리고, 누비옷을 입고 오면 춥고, 사나우면 바람이 분다는 뜻으로, 영등할망이 날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영등할망이 노한다고 배를 타지 못하게 하는데, 이것 역시 사나운 날씨와 관련 있는 속신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곧 영등할망은 제주 지역의 2월 날씨와 다름이 없는 존재로, 자연 현상이 신격으로 좌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을 단위로 영등굿을 하며 영등할망을 위했던 것은, 날씨가 일 년 내내 농사와 어업 활동에 지장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제석굿(帝釋─)
제석신을 모시는 굿거리.
재수굿이나 경사굿 등 큰굿의 하위 굿거리로서, 불사제석굿(중부지방)·시준굿(동해안)·셍굿(함경도) 등의 다른 이름이 있다. 제석굿은 지역에 따라 성격이 다소 차이를 보이나 불교적 색채가 가장 강한 굿거리라는 특징이 있다.
중부지방에서는 큰굿 열두거리 중 셋째 거리(오산)나 다섯째 거리(서울)에서 제석거리가 행하여진다. 무녀는 노란색 대신 복에 흰 장삼을 겹쳐 입고 고깔을 쓰고 염주를 걸고 방울부채를 들고 등장하여, 먼저 제석신의 유래담인 무속신화 「당금아기」를 가창한다. 서울지방에서는 「당금아기」가 구송되지 않고 제석청배·제석노랫가락·제석공수로의 순서로 진행된다.
그러나 오산·화성·안성 등 경기 남부지역에서는 제석신의 본을 푸는 「당금아기」가 구연되어 제석공수·바라팔이·제석축원 순으로 진행된다. 제물도 제석시루·고양미(공양미)·북어·삼색과일 등이 진설되며, 시루나 고양미에는 고깔을 접어 얹어놓는다. 다른 굿거리와는 달리 비린 제물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해안지역에서는 시준굿 또는 중굿이라고 하는데, 무녀는 고깔 쓰고 장삼 입고 염주 걸고 등장하여 무속신화 「당금아기」를 구연하고 중의 흉내를 골계적으로 연기한다. 그 다음에 바라춤을 추고 제주를 불러내어 걸립을 시킨 뒤, 남자무당이 등장하여 ‘중잡이놀이’를 한다. 그리고 축원을 한 다음 끝을 맺는다.그밖에 함경도지방에서는 셍굿이라고 하는데 「제석풀이」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무속신화가 구연되고 있다. 호남지역에서는 제석굿이라고 하는데 「제석풀이」가 가창되고 여러 가지 축원·덕담이 이어진다.
제석신은 그 이름이 불교의 신인 제석천(帝釋天)에서 유래한 듯하나, 신의 기능이나 성격은 불교의 신이라기보다 무속의 생산신이나 수복관장신(壽福管掌神)임이 드러난다. 경기도 양주지역에서는 제석거리 후반에 소놀이굿이 이어지는데, 이것은 제석거리가 농경생산신에 대한 제향(祭享)임을 말하여주는 것이다.
또한, 「제석풀이」의 신화적 성격을 보면, 여주인공 당금아기가 아들 삼형제를 낳아 기른다는 내용으로 당금아기는 삼신으로 좌정하고, 삼형제신은 농경생산신이 된다고 되어 있다. 또한, ‘시준단지’·‘제석단지’와 같은 곡물숭배의 민간신앙을 보아도 제석신은 농경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회심곡」이나 무가·축원문 등에는 제석신이 인간의 복록을 관장하는 신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제석신은 무속의 생산신이면서 동시에 복신(福神)이며, 제석굿은 바로 생산신이나 복신에 대한 무속의례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불교의 영향으로 형식이나 겉모양에 불교적 색채가 나타날 뿐이다.
